변호사 박기민|[email protected]
1.이사회 결의가 필요한 경우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집니다. 대표이사는 회사의 행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행위 자체를 하는 회사의 기관이므로, 회사는 주주총회나 이사회 등 의사결정기관을 통해 결정한 의사를 대표이사를 통해 실현하며 대표이사의 행위는 곧 회사의 행위가 됩니다.
대표이사의 대표권은 법률 또는 회사 내부 규정에 의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상법 제393조 제1항은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고 규정하여 일정한 행위는 반드시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집행하도록 하고 있고, 이와는 별도로 회사의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 등을 통해서도 일정한 행위(예컨대, 보증)를 할 경우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해 놓을 수 있습니다.
2.이사회 결의 없이 한 대표행위의 효력
상법은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은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제209조 제2항, 제389조 제3항). 대표이사가 대표권 제한에 위반한 행위를 하더라도 대표권의 제한을 ‘알지 못하는 제3자’의 신뢰는 보호해 주겠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우리 대법원은 그 동안 제3자가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선의’ 외에도 ‘무과실’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예컨대, 회사의 정관으로 대표이사가 보증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 없이 보증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지 못하였고 이를 알지 못한 데 대하여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회사는 그 보증행위의 무효를 주장할 수 없고 따라서 보증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3. 보호되는 범위의 확장
그러나 최근 우리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거래행위의 상대방이 보호받기 위하여 선의 이외에 ‘무과실’까지 필요하지는 않고 ‘중대한 과실’만 없다면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의 입장에 비하여 보호되는 제3자(상대방)의 범위를 확장한 것입니다.
법률상 과실은 중과실(무거운 과실)과 경과실(가벼운 과실)로 분류되는데, 이사회 결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거래 상대방에게 중과실이 없는 한, 설사 가벼운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호를 해 주겠다, 즉, 회사의 보증행위를 유효로 보아주겠다는 취지입니다.
4. 중과실이 있었는지 판단하는 방법
거래 상대방에게 중과실이 있는지는 이사회 결의가 없다는 점에 대한 제3자의 인식가능성, 회사와 거래한 제3자의 경험과 지위, 회사와 제3자의 종래 거래관계, 대표이사가 한 거래행위가 경험칙상 이례에 속하는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는데, 다만, 제3자가 회사 대표이사와 거래행위를 하면서 회사의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이사회 결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조치를 취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5. 결론
통상 거래 상대방이 주식회사인 경우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서에 선결조건 또는 진술보증사항으로 ‘본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내부적인 수권절차(주주총회, 이사회 결의 등)를 모두 마칠 것’이란 취지의 조항을 둡니다. 다만, 이와는 별도로 이사회 결의가 없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예컨대, 계약 내용이 매우 이례적이고 회사에 불리하며 행위자도 대표이사나 임원이 아닌 실무자급에 불과한 경우 등에는 반드시 이사회 결의서를 징구하거나 책임 있는 임원에게 이사회 결의 여부를 확인하고 그 증빙을 남겨 두는 등 사후 분쟁을 대비한 조치를 취한 후에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