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무한|[email protected]
1951년 국민의료법으로 제정된 우리 의료법은 최초 제정 당시부터 ‘의료관계법령’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가, 1973년 개정법부터는 위반 법령의 제한없이 어떠한 범죄로든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의료인의 결격사유로 규정하여 필요적 면허취소 사유를 넓게 규정하여 왔으며, 2000년 개정 의료법부터는 ‘의료관계법령’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에만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변경되어 다시 면허취소사유가 축소된 바 있었습니다.
최근 의료인의 성폭력 사건들이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의사 면허 관리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었으며,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은 1973년 개정 의료법과 마찬가지로 의료관계법령의 위반 여부를 불문하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개정안일 뿐만 아니라, 범행의 경중 및 고의성 여부를 불문하고 금고형에 해당하기만 하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의료인의 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행 등 중대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한 면허 취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현행 의료법 제8조 제4호는 “형법 제347조(허위로 진료비를 청구하여 환자나 진료비를 지급하는 기관이나 단체를 속인 경우만을 말한다)… (중략)…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였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를 의료인의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바, 쉽게 표현하자면 허위로 진료비를 청구하여 사기 혐의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의사의 경우 면허가 취소된다는 것입니다.
의사 등 의료인의 면허취소 사유 중에서 실무상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바로 위와 같이 ‘의료관련 법령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기사건에 연루되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모든 경우에 의료인의 면허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 규정은 의료인이 (직접) “허위로 진료비를 청구하여” 처벌받는 경우만을 상정하고 있을 뿐, 제3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는 방식의 보험사기 범행에 가담한 경우, 예를 들어 환자가 보험사기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의료인이 허위의 진단서를 발급하는 등으로 돕는 ‘보험사기 방조’에 나아간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험사기 방조로 인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의사가 면허취소 처분을 받고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면허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보험사기 방조의 경우 의사가 허위로 진료비를 청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취소 처분이 부적법하다고 판시하여 의사 측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은 보험사기 방조에 나아간 의사에 대하여 보건복지부가 의사면허취소처분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며, 의사가 보험사기의 방조범이 아니라 공동정범으로 의율될 경우에는 다른 법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도 존재하므로, 이와 관련하여 이후의 대법원 판례의 입장과 의료법 개정안의 향방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