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박기민|[email protected]
1. 이사의 감시의무를 강화하는 판례의 경향
주식회사의 이사에게 법적으로 어느 범위까지 의무를 지우고 책임을 물을 것인지는 회사법의 오래된 논제 중의 하나입니다. 대법원이 주식회사의 이사에게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다고 처음 판시(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7다31518 판결)한 이래 최근 각급 법원은 이와 같은 감시의무를 근거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잇따라 선고하고 있습니다.
2. 구체적인 판결의 내용
(1)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7다31518 판결
대우그룹의 분식회계와 관련된 사건에서 법원은, 업무담당이사들이 내부적인 사무분장에 따라 각자의 분야를 전담하여 처리하는 경우에도 다른 이사들의 업무집행에 관한 감시의무를 면할 수는 없고, 그러한 경우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가 이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의 이사들에게 주어진다고 선언하면서, 그러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아니하거나 위와 같은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이용한 회사 운영의 감시ㆍ감독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 다른 이사의 위법하거나 부적절한 업무집행을 알지 못한 경우라면, 다른 이사의 위법하거나 부적절한 업무집행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각각의 이사는 준법감시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작동하도록 할 의무가 있고 이를 방기하였다면 다른 이사의 위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입니다.
(2) 서울고등법원 2021. 9. 3. 선고 2020나2034989 판결
임직원들의 담합으로 회사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자 주주들이 이사(대표이사, 평이사, 사외이사 포함)의 감시의무 위반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라고 주장하면서 대표소송을 제기한 사안입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위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대표이사가 아닌 평이사와 사외이사의 책임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이사인 피고들이 개별 공사에 관한 입찰 업무에 관여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어 이 사건 입찰담합에 관하여 알지 못하였고 알 수도 없었으며 이를 의심할 만한 사정 또한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고들은 이 사건 입찰담합 등 임직원의 위법행위에 관하여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이사의 감시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17다222368 판결
이 사건 역시 회사가 담합행위를 하여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자 주주들이 대표이사에게 손해배상을 구하는 대표소송을 제기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이전에 자신이 선언한 위 (1)의 법리를 재확인하면서, 나아가 이러한 내부통제시스템은 비단 회계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회계관리제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사업운영상 준수해야 하는 제반 법규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그 준수 여부를 관리하고, 위반사실을 발견한 경우 즉시 신고 또는 보고하여 시정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되어야 하므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른 내부회계관리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시하였고, 결국 대표이사가 담합행위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였고 임원들의 행위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유의할 점
대표이사가 아닌 평이사와 사외이사에게까지 실효적인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및 운용 책임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아직 대법원에서 확정되지는 않았고, 구체적인 업무집행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또는 관여할 수 없는 평이사와 사외이사에게도 동일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 과연 현실에 부합하는지에 대하여는 비판적인 견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사내이사, 사외이사, 비상무이사를 불문하고 모든 이사에게 보다 진일보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용할 의무를 지우고 이러한 의무를 방기한 경우에는 구체적인 위법행위를 알지 못한 경우에도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므로, 회사 운영시 또는 피투자회사의 이사 취임시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