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무한|[email protected]
언론기사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피해는 약 26배 증가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전화통화를 이용한 전통적 방식의 보이스피싱의 증가세보다 SNS 메신저를 이용한 메신저피싱의 피해 증가세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초경부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온라인 금융거래와 상거래가 급증한 점 또한 보이스피싱 폭증의 원인 중 하나로 파악됩니다.
보이스피싱 피해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수많은 언론과 매체에서 소개되고 있으나, 보이스피싱을 실제로 당했을 때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방법과 법적 근거에 관하여는 소개된 자료가 많지 않으므로, 실제로 수억원대의 보이스피싱 피해구제를 위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진행하였던 경험에 비추어 이번 뉴스레터에서 피해발생시 대처방법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핵심은 사기범과 피해자가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송금 또는 결제에 있습니다. 따라서, 피해자의 피해금액은 누군가의 은행계좌를 한번 이상 거친 뒤 현금화되어 범인에게 흘러가기 때문에, 피해를 당했다는 의심이 들면 그 즉시 본인의 거래은행 콜센터에 신고하고 지급정지를 요청하는 것이 가장 첫번째로 취해야 할 조치입니다. 시중 은행들은 대부분 보이스피싱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시간대를 불문하고 의심이 든다면 그 즉시 콜센터에 전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4조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지급정지 요청이 있는 경우, 그 즉시 피해금이 송금된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피해금이 해당 계좌에서 다시 다른 계좌로 송금된 경우 2차 송금계좌 또한 지급정지하여야 하며, 만약 그 연결계좌들이 다른 은행의 계좌인 경우에는 그 은행들에게도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급정지를 요청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청을 받은 다른 금융회사는 해당 계좌에서 다시 피해금이 흘러간 제3의 금융기관에 대하여 또다시 거듭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고, 심지어 이렇게 지급정지된 계좌들에 대하여는 질권을 설정하거나 제3자가 손해배상/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진행하거나 민사집행법상 압류/가압류/가처분을 신청하거나 국세징수법상 체납절차를 개시하는 등의 행위마저 금지되므로(위 법 제4조의2), 결국 피해금이 다른 계좌를 통해 여러 차례 송금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해당 계좌들 모두를 동결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지급정지 조치는 악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허위로 지급정지를 요청한 경우 같은 법 제16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으므로 제3자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으로 함부로 피해신고를 하거나 지급정지를 요청해서는 안됩니다)
일단 지급정지요청을 하고 나면, 최대한 빨리 가까운 경찰서에 방문하여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사건사고사실확인증’을 교부받아 해당 거래은행에 제출하여야 실무상 지급정지의 효력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연결계좌가 있는 경우에는 연결계좌 은행에도 확인증을 제출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에 관하여는 거래은행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지급정지조치가 풀리지 않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지급정지 조치를 통하여 계좌가 동결되면 금융회사는 금융감독원에 채권소멸절차 개시를 위한 공고를 요청하여 해당 계좌에 입금되어 있는 피해금에 대한 명의인의 예금채권을 소멸시키고 피해금을 피해자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계좌 명의인이 2개월 이내에 채권소멸절차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해당계좌가 사기이용계좌가 아니라는 사실, 즉 적법한 거래관계에 따라 송금받은 금액이라는 사실을 소명하면 지급정지 조치가 해소되게 됩니다.
따라서, 피해자는 채권소멸절차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어 지급정지조치가 해소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지급정지 조치를 취한 직후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손해배상청구 등의 민사소송을 제기하게 되는데, 민사소송은 그 과정이 길고 법률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으며, 계좌명의인에게 잘못이 없다면 패소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만약 피해신고 및 지급정지 요청 이전에 범인이 피해금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해간 경우라면 피해금을 되돌려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범행에 이용된 은행계좌의 명의인이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경우라면 해당 명의인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유효하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명의를 도용 당하거나 적법한 거래관계에 기반하여 송금되는 경우이므로 결국 민사소송에서 패소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범인이 금괴나 물건을 구입하고 피해금을 그 대가로 지급하는 경우, 판매자에 대한 민사소송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최근 등장한 중고거래 삼각사기 보이스피싱 유형도 각 송금 과정 중 한 단계에 적법한 거래관계가 게재되어 있어 피해금 반환청구가 곤란한 경우에 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범인 A가 중고거래 판매자 B에게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겠다고 접근하여 송금계좌 정보를 받은 뒤, 피해자 C를 기망하여 물건대금 상당액을 B의 계좌로 송금토록 하고 물건을 받아간다면, 피해자 C가 뒤늦게 피해사실을 인지하고 B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법원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에 관하여 반환청구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아직까지 명시적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B는 자신이 판매한 물건에 대한 대가로 대금을 수령한 것이므로 이를 부당이득이라고 할 수 없고, 정상적인 중고거래 과정에서 대금을 수령하였을 뿐 범행에 가담한 바가 없기 때문에 고의, 과실 등 귀책사유를 요건으로 하는 손해배상청구 또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C의 입장에서는 ‘착오에 의한 송금’이므로 부당이득으로서 반환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할 수도 있겠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착오송금이란 제3자에게 보내려는 의사를 가지고 송금을 하다가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하는 등의 착오에 의하여 송금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위 사례에서와 같이 피해자 C가 판매자 B의 계좌번호 및 명의인 정보를 정확히 인지하고 송금한 것이라면, 송금 자체에는 아무런 착오가 없어 착오송금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보이스피싱은 피해금액의 규모가 비교적 크지 않고 범행수법이 교묘하며, 피해액을 돌려받기 위한 절차가 복잡하고 때로 법률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 피해회복이 매우 어려운 유형의 범죄인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해 발생 후 대응조치에 의해 실제로 피해가 회복되는 가능성이 높지 않으므로 피해발생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