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녹음의 불법성

변호사 김무한|[email protected]
 
 

1. 비밀녹음과 통신비밀보호법

  녹음파일과 녹취록은 많은 소송에서 증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녹음 파일 자체를 법정에서 재생하여 증거조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증거조사의 편의성 때문에 녹음파일을 문서화한 녹취록을 제출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녹음파일이나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는 것은, 상대방이 부인하고 있는 사실에 관하여 서류나 기타 증거에 의하여 입증할 수 없을 때, 상대방 또는 관계자의 발언을 근거로 주장사실을 입증하려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증거로 제출되는 녹음파일과 녹취록은 녹음 당시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은 소위 “비밀녹음”인 경우가 훨씬 많은데, 과연 비밀녹음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여부에 대하여는 예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법인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는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같은 법 제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위 규정들을 위반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당사자”란 우편물의 경우 발송인과 수취인, 전기통신의 경우 송신인과 수신인을 말하고 “감청”이란 당사자 동의 없이 전기통신의 내용을 채록하는 등의 행위를 말합니다.

  즉,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타인간”의 통신 및 대화의 비밀이기 때문에, 통신 및 대화의 당사자가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이 금지하고 있는 불법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전화통화 또는 대화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동의가 없이 대화를 녹음할 수 있고, 이는 형사상 범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민사상 불법행위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그 녹음파일 및 녹취록은 법원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어 증거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음성권 침해 불법행위

  그러나, 최근 위와 같은 전통적인 해석과 다른 입장의 하급심 판결들이 등장하고 있어 추후 판례로 정립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원지방법원 2013나8981 판결은, A가 B에게 전화를 걸어 제3자 사이의 임대차계약 관계 등에 관한 통화를 하며 이를 비밀리에 녹음하고 이 녹음파일의 녹취록을 제3자 사이의 임대차보증금청구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한 사례에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통화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하고 이를 재생하여 녹취서를 작성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헌법 제10조 제1문 및 제17조에서 보장하는 ‘음성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시하고 300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인정하였습니다.

  나아가,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소1358597 판결은, 같은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A가 B의 동의 없이 음성을 녹음하자 B가 A의 휴대폰을 빼앗고 음성권 침해를 원인으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에서, 법원은 (1) 상대방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된 인격권의 일종인 음성권 침해에 해당하는 불법행위이고, (2) 다만, 녹음자에게 비밀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이나 이익이 있고 비밀녹음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 사회윤리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다고 평가받을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되며, (3) 이 사례는 공개된 장소에서 여러 교사가 있는 곳에서 녹음이 이루어졌고, 전체 이야기 중 극히 일부분의 녹음일 뿐만 아니라 관련소송에 증거로 제출하기 위한 목적이므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항소심에서도 비밀녹음이 원칙적으로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나, 이 사건에서는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하여 원심판결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나68478 판결).

  정리하자면,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않은 비밀녹음을 금지하는 현행법률은 존재하지 않으나, 하급심 법원은 헌법상의 기본권에서 파생된 ‘음성권’을 근거로 하여 비밀녹음이 원칙적으로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며, 다만 상대방과의 분쟁상황 등 사회윤리적 관점에 비추어 비밀녹음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위법성이 조각되어 적법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고, 만약 녹음 상대방과의 직접적인 분쟁이 없는 상황에서 제3자와의 소송을 위해 비밀녹음을 한 경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계약서 작성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는 거래 상대방과의 인적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거래를 시작할 때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하면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으로 오해받을까 우려하여 계약서 없이 각종 거래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며 대부분의 경우 계약서 없이 거래를 진행하더라도 특별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고 거래과정에서 진행된 당사자의 행동이나 거래내역에 따라 중요한 계약조건들이 입증되기도 합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각종 녹음파일과 녹취록이 법정에 제출되어 중요한 증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쟁이 실제로 현실화되었을 때에 각 당사자의 권리/의무관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계약서이며, 계약서가 존재하는 거래관계의 경우 다툼의 여지가 적으므로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는 가능성도 낮습니다. 녹음파일과 녹취록이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 및 통화를 기록한 것으로서, 추후에 선별하여 그 안에 포함된 중요내용들을 정리하여 주장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힘든 작업일 뿐만 아니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밀녹음의 경우 상대방에 대한 음성권 침해의 불법행위로 판단되어 손해배상 등 책임을 부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거래에 있어서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기타 중요한 변경사항이 있을 때마다 수정/변경계약서,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등 증거자료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