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대위소송을 통하여 보험사에 제공된 건강정보

 

변호사 김무한|[email protected]

 

  법무법인 우리누리의 2022년 9월호 뉴스레터에서는 “실손보험사 대위소송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향후 전망”이라는 표제 하에, 최근 선고된 대법원 판례에 관하여 변창우 대표변호사의 평석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위 판결은 실손보험사들이 다수의 의료기관을 상대로 하여 임의비급여행위를 이유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1) 병원이 진료비용을 받아서는 안되는 진료에 관하여 환자들로부터 진료비용을 받았고, (2) 그 진료비용을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으로 보전해주었으므로, (3) 보험사가 환자들을 대위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하였던 사안인데, 대법원은 그러한 목적의 채권자대위권 행사가 부적법하다고 판시하여 보험사의 청구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하급심 법원에서는 동일한 쟁점으로 다투어지던 수많은 사건들이 보험사의 패소판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현재 (1) 보험사의 소취하, (2) 소취하를 내용으로 하는 화해권고결정, (3) 보험사 패소 판결 등으로 속속 종결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건들에서 이미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을 통하여 보험사가 취득한 환자들의 건강정보가 과연 적절하게 폐기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큰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위 사건들의 청구원인이 ‘임의비급여’를 주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보험사로서는 해당 환자의 증상에 적합하지 않은 의료기술이 실시되어 진료비가 청구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여야 했고, 그러려면 수많은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을 거치는 절차가 필요하였습니다.

  진료기록은 개인정보 중에서도 ‘건강정보’에 해당하므로 보다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는 정보이지만, 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8호에 따라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이 있으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진료기록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재판을 받는 피고 의료기관으로서는 법원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사건 별로 때로는 수백명, 때로는 수천명의 환자들에 대한 진료기록이 법원에 제출되었습니다.

  필자는 보험사가 제기한 채권자대위소송에서 피고측 의료기관을 다수 대리하여 소송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진료기록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신청이 있을 때마다, 해당 소송 자체가 부적법함을 강변하면서 만약 보험사의 채권자대위청구가 부적법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문서제출명령을 인용한다면, 아무 이유 없이 많은 환자들의 건강정보가 환자들이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보험사에게 제공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어 심히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었습니다.

  특정한 법적 쟁점이 문제되는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관련된 모든 사건의 재판이 반드시 중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각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어떠한 사건은 문서제출명령이 내려졌고, 어떠한 사건은 대법원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사건 진행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앞서 소개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즈음에는 이미 수많은 환자들의 진료기록이 여러 보험사에게 제공된 상태였습니다.

  보험사는 보험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영리기업이므로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건강정보를 분석하여 영리추구의 목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위와 같은 건강정보의 보험사 제공은 최종적으로 다수의 보험가입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바, 2021. 7. 20.자 의협신문 기사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생명보험사 3곳과 손해보험사 3곳 등 6개 보험사가 심평원으로부터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을 위한 최종승인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이로 인하여 위 6개 보험사가 공공의료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보험 보장범위를 확대하고 보험료를 낮출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었고, 이에 대해 의협은 “공공의료데이터를 민간보험사들이 사용할 경우 (발병) 가능성이 낮은 질환에 대한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발병) 가능성 높은 질환은 가입을 거절하는 식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비판한 바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종윤 의원은 2022. 10. 13.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데이터 제공에 대한 자체 심의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발언하면서, 데이터 3법 통과 이후 민간보험사와 헬스케어 기업 등에 제공된 가명처리 정보가 ‘새로운 보험상품 개발’,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이라는 목적으로 제공된 것이 확인되어, 사실상 위와 같은 정보 제공이 보험사 등의 영리 추구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령은 갈수록 개인정보의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위와 같은 심평원의 공공의료데이터 제공은 이미 가명처리 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큰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 단지 보험사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른 소송절차에서 입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의 명령에 의하여 많은 환자들의 진료기록이 보험사측에 제공되어 버린 점은 매우 우려스럽고 유감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정보보호법 제19조에 따르면 위와 같이 제공된 정보는 제공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거나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21조 제1항에 따르면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달성 등 그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되었을 때에는 지체없이 그 개인정보를 파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와 같이 소송과정에서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취득하게 된 보험사들은 해당 사건의 종결 즉시 그 진료기록을 재생 불가능한 방법으로 파기함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파기 과정과 결과를 피고 의료기관 또는 정보주체가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확인할 길이 마땅치 않으므로 실제로 적절한 파기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조차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바, 이에 관하여 제도적, 실무적인 심사숙고와 개선방안의 모색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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