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무한|[email protected]
의뢰인과 상담을 할 때에 변호사가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 중에 대표적인 것들로는, ‘재판으로 진행할 경우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 ‘우리 재판은 왜 아직도 진행이 안되는가’ 등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속기간이 한정되어 있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형사재판이나 급박한 필요에 의하여 변론절차 없이 심문으로만 진행하는 보전소송(가압류, 가처분 등) 등은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되는 편이지만, 일반적인 소송의 경우에는 소요기간을 확답을 할 수 없습니다.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1심의 경우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5개월 이내, 항소심 및 상고심의 경우 기록을 접수받은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판결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강행규정이 아니고 법원의 실무상 그러한 규정에 구속받지 않으므로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상담을 하는 변호사들은 소송의 경우 1심이 대략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고 답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쟁점이 많거나 사실관계가 복잡한 사건, 여러 명의 증인신문이 필요한 사건, 감정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건 등 변론이 길어질 수 있는 경우에는 1심에만 2~3년이 걸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소요기간을 확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재판 절차의 지연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데,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민사소송의 경우 소장이 접수되면 2-3개월 이내에 첫번째 변론기일이 지정되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나, 최근 1~2년 사이에는 소장 접수 후 6개월이 지나도록 첫 변론기일조차 지정되지 않고 감감무소식인 경우도 흔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로서는 답답한 마음에 변론기일 지정신청서를 제출해보기도 하고 담당 재판부에 유선으로 진행상황을 확인해보기도 하지만 다른 재판들로 인하여 변론기일이 꽉 차 있는 경우에는 딱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필자의 주관적 경험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확산 당시 확진자가 다녀간 법원은 수일씩 법원 전체 출입이 통제되기도 하고, 법관의 확진으로 인하여 기일이 연기되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며,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피의자 소환조사 자체가 불가능하여 수사기간이 대폭 길어지는 경우도 허다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포스트 팬데믹 시기로 접어들어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인하여 법원이나 관공서 업무가 중단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미 대규모로 연기되어버린 전국의 재판 일정은 새롭게 접수된 사건들의 진행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 정상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재판지연 현상은 단지 필자 개인의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 통계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확인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민, 형사, 행정소송 모두 제1심 및 항소심의 평균 처리기간이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같은 기간동안 1심에서 1년 넘게 처리되지 못한 소송사건이 민사의 경우 65%, 형사의 경우 68%나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 변호사 중 89%가 재판 지연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변하였으며, 소장 제출 후 3개월 이내에 1회 변론기일이 지정된다고 답변한 사례가 15.7%에 불과하였고, 6개월 이내에 지정되는 경우가 59.3%, 1년 이내에 지정된다고 답한 경우도 24%에 달하였습니다.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한 재판지연의 원인에 대하여 언론은 여러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법관들의 워라벨 중시 경향, 사건의 복잡화 등), 법조계에서는 늘어나는 사법 수요에 비추어 법관의 숫자가 발맞추어 증가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재판지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던 법관들이,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켜켜이 쌓여버린 적체 사건들을 신속하게 해결할 여력이 있을 리 없고, 이미 지연된 재판절차에 익숙해져버린 법원이 빠른 시일 내에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지도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
소송을 경험하는 당사자들은 분쟁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재판절차가 지연되면 될수록 권리구제에 큰 악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신속한 재판절차는 사법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인신 구속까지 가능한 형사재판의 경우에는 절차의 신속성이야말로 실체적 정의에 비교될만큼 중요한 가치로 평가받습니다.
심지어 법학에서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유명한 법언까지 존재할 정도이며, 우리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제3항 역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기본권의 하나로 명시하고 있고, 모든 소송절차의 기본법이라 할 수 있는 민사소송법 제1조 제1항에서도 “법원은 소송절차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재판의 신속성과 경제성을 공정성에 버금가는 가치로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소송 절차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아왔었으나, 재판 적체와 지연의 문제가 불과 수년 사이에 폭증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단시간 이내에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으므로 이는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와 국회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사법시스템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하여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