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박기민|[email protected]
1.진술보장조항의 의미
주식 및 경영권 양수도계약에는 보통 상당한 분량의 진술보장조항이 들어갑니다. 진술보장(또는 진술보증)은 영미법계의 기업인수합병계약에서 유래한 것으로 계약의 일방 당사자로 하여금 일정한 사실 내지 정보를 진술하게 하고 그 내용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보장하도록 하는 조항을 말합니다. 영미법에서 유래한 조항이고 전형적인 민사책임(채무불이행책임, 하자담보책임, 불법행위책임 등)과는 그 양상이 달라 법적 성격을 어떻게 인식하고 위반시의 법률효과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에 관하여 논란이 있습니다.
2. 진술보장조항 위반이 문제되는 경우
가령 매도인이 매도대상회사에 관하여 ‘회계장부에 누락된 부외부채가 없다’거나 ‘행정처분이 내려질 만한 법규위반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진술보장을 하였는데, 거래 완료 이후 부외부채가 발견되거나 거래 완료 이전의 법규위반 사유로 당국으로부터 거액의 이행강제금 등이 내려진 경우, 만약 매수인이 거래 당시 이와 같은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면 매도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책임 등을 추궁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매수인이 거래 당시부터 부외부채가 존재하고 이행강제금이 내려질 만한 법규위반 사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사 등을 통해 파악하여 잘 알고 있었을 경우(매수인이 ‘악의’인 경우)에도 과연 매도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입니다. 이에 관하여는 진술보장 위반책임은 매수인의 악의 또는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성립한다는 견해, 매수인이 악의이고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견해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우리 대법원 판례의 입장
이에 관하여 우리 법원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대법원 2012다64253, 2017다6108 판결).
1) 매도인이 대상회사의 상태에 관하여 사실과 달리 진술보증을 하고 이로 말미암아 매수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해당하므로 일종의 ‘채무불이행 책임’이 성립한다.
2) 계약서에 ‘진술보증조항’과 그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조항’이 함께 있다면 그 조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여야 하고, 무과실책임인지 아니면 민법 제390조 단서가 적용되는 과실책임인지는 계약 내용과 그 해석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3) 이와 달리 계약서에 ‘진술보증조항’만 있고 그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조항’이 없다면 민법 제390조를 비롯한 관련 규정들에 따라 채무불이행책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따라서 매도인의 귀책사유가 필요).
4) ‘진술보증조항’과 그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조항’이 있고, 손해배상과 관련하여 매수인이 악의인 경우에 손해배상책임이 배제된다는 취지의 조항이 없다면, 거래완료 후 진술보증조항의 위반사항이 발견되고 그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면 매수인이 위반사항을 계약 체결 당시 알았는지와 관계없이 손해를 배상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5) 진술보증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나 금액을 정하는 조항이 없는 경우에는 매수인이 소유한 대상회사의 주식가치 감소분 또는 매수인이 실제 지급한 매매대금과 진술보증 위반을 반영하였을 경우 지급하였을 매매대금의 차액을 산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손해배상액을 정하여야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데서 오는 불확실성을 해소하고자 손해배상의 범위와 금액을 산정하는 방법을 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배제하거나 제한할 만한 사정이 없는 한 그에 따라야 한다(따라서 발견된 부외부채 전액 또는 부과된 이행강제금 전액을 손해액으로 보는 조항도 유효).
4. 결론
다만, 진술보장조항에 관한 이론과 판례들이 아직 많이 축적되지 않았고, 매수인이 계약 체결 당시 매도인의 진술보장위반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반면 매도인은 위반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이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매수인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를 제한 없이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 또한 합리적인 것이므로, 구체적인 사건의 사실관계와 계약서의 구체적인 문언에 따라서는 위 대법원 판결과 결론을 달리하는 하급심 법원의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위에 언급한 대법원 판결의 원심(항소심)은 악의의 매수인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