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상균|[email protected]
오늘은 이혼 관련하여 작년에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2001년 혼인신고를 하였고 슬하에 자녀 한 명을 두었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2004년 이혼조정으로 이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혼이 성립하고 나서 2019년경 원고는 다시 피고를 상대로 주위적으로 혼인무효, 예비적으로 혼인취소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원고가 피고와 혼인신고를 한 것이 혼인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상태에서 한 것이므로 실질적 합의도 없이 혼인신고를 한 것에 해당하여 혼인 무효라는 것입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미 이혼을 하였으므로 혼인관계의 효력을 다툴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보아 각하하였습니다. 이는 종전 대법원 판례의 태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 종래 대법원 판결(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
청구인과 피청구인 사이의 혼인관계가 이미 협의이혼신고에 의하여 해소되었다면 청구인이 주장하는 위 혼인관계의 무효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의 확인으로서 그것이 청구인의 현재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자료가 없는 이 사건에 있어서 단순히 여자인 청구인이 혼인하였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만으로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고과 피고가 설사 이혼하였다고 하더라도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와 배치되는 취지의 종전 대법원 판결(위에 소개한 82므67 판결)을 변경하였습니다(대법원 2024. 5. 23. 선고 2020므15896 전원합의체 판결).
먼저 이혼과 혼인무효의 차이점에 관하여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이혼은 혼인 성립 후 발생한 사유로 혼인관계를 종료하는 것을 말합니다.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이 있으며, 협의이혼의 경우에는 어떠한 이유든 가능합니다. 재판상 이혼은 민법에 이혼원인이 열거되어 있습니다(민법 제840조). 대표적으로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민법 제840조 제1호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재판을 통하여 이혼할 수 있습니다.
혼인 무효는 혼인 성립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민법상 혼인 무효는 크게 2가지 사유로 분류할 수 있는데,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그리고 당사자 간에 근친혼 등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경우입니다. 혼인 취소는 상대방의 사기나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 등에 인정됩니다(민법 제816조).
혼인 무효는 특별한 의사표시 없이도 원천적으로 무효인 것이고, 혼인 취소의 경우 취소권자가 법원에 취소를 청구하여 무효로 돌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것은 이혼이라 생각하지만 위와 같이 혼인 성립 당시에 문제가 있다면 혼인 무효 또는 취소 소송을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혼인 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서 당사자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협의이혼 등으로 혼인관계를 종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혼과 혼인 무효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혼인 무효의 경우 애초에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이혼과 달리 인척 간 혼인금지(민법 제809조 제2항), 형법상 친족 간 재산범죄에 대하여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형법 제328조 제1항 등)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혼 전에 부부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하였다면 다른 일방은 이혼 하더라도 그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부담하지만(민법 제832조) 혼인 무효의 경우 제3자는 다른 일방에게 일상가사채무에 대한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혼인 무효 판결을 받으면 일정한 경우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혼으로 당사자 사이의 혼인관계가 해소되었다면 기왕의 혼인관계는 과거의 법률관계가 되었다고 보아 더 이상 그 효력을 다툴 이익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대법원도 「재판의 청구가 있는 이상 법원은 가능한 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민의 법률생활과 관련된 분쟁이 실질적으로 해결 될 수 있도록 필요한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최근 대법원의 판례 변경에 관하여 다루어 보았습니다. 혼인 무효나 취소 등 문제가 있는 경우 반드시 법률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