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무한|[email protected]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소송에 증인으로 소환되는 경우, 반드시 출석을 해야 하는 것인지 문의하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정상적으로 근무하다가 퇴사를 하였는데 과거 내가 담당하였던 일에 관하여 회사와 거래처간의 분쟁이 발생한다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업무담당자를 증인으로 신청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도 없이 갑작스럽게 증인소환장을 받은 사람은,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을 하는 것 자체도 두렵고 귀찮은 일이지만, 혹시라도 기억을 못해내거나, 진술을 잘못하여 큰 일이 나지 않을까, 법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혹은 사건 당사자로부터 해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통상적으로 다른 사람의 싸움에 굳이 끼어드는 것을 꺼려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며칠 전의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사건의 발생 이후에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환에 응하여 기억나는대로 증언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빠른 해결책입니다. 만약 도저히 소환에 응할 수 없는 경우(수용시설 수감, 질병/상해로 인한 입원, 해외 장기체류 등)에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불출석사유를 자세하게 기재하고 관련 증빙자료를 첨부한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여 법원이 증인신문기일을 변경/연기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증인 소환의 이유가 간단한 사실관계의 확인에 불과하다거나, 증인이 사건과의 관련성이 낮고 너무 먼 곳에 거주하여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하는 것이 부적절한 경우 등에는 서면 증언 방식(진술서 제출방식)으로 증언을 할 수도 있겠으나(민사소송법 제310조 제1항), 이미 증인 소환이 된 상태에서 증언 방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위에서 말한 출석하기 곤란한 사정 등은 법원이 당사자로부터 증인신청을 받고 증인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이미 고려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한 사정을 고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증인으로 소환하였다면, 법원이 이미 소환한 증인을 다시 서면 증언 방식으로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입니다.
증인소환을 받은 사람은 원칙적으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출석하여 증언을 할 법률상의 의무를 부담합니다(민사소송법 303조). 증인 소환장을 받고도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적 제재가 부과되는데,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처분을 받을 수 있으며(민사소송법 제311조 제1항), 과태료 재판을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다시 출석하지 않은 경우 7일 이내의 감치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같은 조 제2항). 심지어 법원은 증인신문을 위하여 증인을 구인할 수도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여기서 감치나 구인은 법률적 효과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있기는 하나, 사실상 법원의 명령에 의하여 체포 또는 구속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강제력이 상당히 큰 공권력의 행사입니다.
물론, 증인이 불출석했다고 하여 실제로 감치나 구인을 하는 경우는 실무상 극히 드문 것으로 보이지만, 관련법령에 따라 얼마든지 감치나 구인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므로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증인 불출석에 대한 과태료는 실무상 첫 불출석 때부터 최대한도인 500만원까지 부과되는 경우가 많고, 다음 재판에도 불출석하는 경우에는 다시 과태료가 별도로 부과되며, 이후 불출석 할 때마다 계속 별도의 과태료가 부과되게 됩니다. 법원이 한번 채택한 증인은 신청한 당사자가 증인신청을 철회하지 않는 한, 증인이 아무리 계속 불출석하더라도 여러 차례에 걸쳐 계속하여 소환하게 되기 때문에 증인이 거듭되는 과태료 처분을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소환에 불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출석하였던 증인이 다음 소환에 응하여 법정에 출석하면 법원은 이미 부과된 과태료를 취소하는 것이 관례인데, 굳이 재판장의 꾸중을 들어가며 과태료 부과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가급적이면 첫 소환에 응하여 증언을 하는 것이 재판의 공전과 과태료 부과처분의 불이익을 피하는 길인 것입니다.
재판에 출석한 증인은 재판 시작 전에 법원 정리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게 되며, 재판이 시작되면 증인석에서 선서를 하고 증언을 하게 됩니다. 증인은 자신의 친족 또는 후견인 등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을 염려가 있는 사항, 또는 치욕적인 사항에 관한 증언을 거부할 수 있으며(민사소송법 제314조), 법률상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직업을 가진 증인(변호사, 회계사, 의료인 등)이 직무상 비밀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신문을 받거나, 증인이 기술 또는 영업상 비밀 등에 관한 신문을 받을 때에는 개별 질문에 대하여 증언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315조).
한편, 선서를 한 증인이 허위의 증언을 하면 형법상 위증죄에 해당하여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만약 형사사건이나 징계사건에서 당사자를 모해할 목적으로 위증한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으므로(형법 제152조), 누군가의 부탁을 받거나 기타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신의 기억과 배치되는 허위의 증언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허위의 증언이라 함은,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배치되는 진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증인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말합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하고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대로 진술한 행위를 ‘허위의 증언’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을 하게 되더라도 기억하는대로만 진술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 사항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다면 위증의 책임을 부담할 이유가 없으므로, 증언 과정에서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실관계와 다른 기억에 의존하여 진술하게 될 경우 재판과정에 혼란을 주고 증인신문이 복잡하게 꼬일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에 증인으로 소환되었다면, 그 사건과 관련된 과거의 사실관계에 관한 객관적인 기록이나 메모 등을 사전에 확인한 뒤에 증언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