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변창우|[email protected]
A의 가상자산 거래소 가상지갑에 들어있던 비트코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B의 계정으로 이체되었는데 B는 이를 반환하지 않고 자신의 다른 계정으로 이체하였다. 이러한 경우 B에게 횡령이나 배임죄를 물을 수 있을까
우선 횡령죄가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예금계좌에 돈이 착오로 잘못 송금되어 입금된 돈을 임의로 인출하여 소비한 경우와 비교해볼 수 있다. 예금의 경우 대법원은 “예금주와 송금인 사이에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하고 수취인이 입금된 돈을 임의로 인출하여 소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보았다.
횡령죄의 대상이 되려면 ‘재물’을 횡령하여야 한다. 형법상 재물은 유체물 및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이 이에 해당한다. 비트코인은 물리적 실체가 없으므로 유체물이 아니고 물리적으로 관리되는 자연력 이용에 의한 에너지를 의미하는 ‘관리할 수 있는 동력’도 아님은 명백하므로 재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횡령죄는 성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재물은 아니라도 ‘재산상 이익’에 해당할 수 있을까? 배임죄의 객체는 재산상 이익이므로 만약 비트코인이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면 배임죄 성립 여부를 따져볼 수 있다.
대법원은 “비트코인은 경제적인 가치를 디지털로 표상하여 전자적으로 이전, 저장과 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가상자산의 일종이므로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1도9855). 따라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배임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법리상으로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배임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② 임무를 위배하여 ③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④ 상대방에게는 손해가 발생하여야 한다.
위 구성요건에서 비트코인을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이체받은 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하여 1, 2심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아 배임죄 성립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자여야 하는데, 가상자산 이체의 경우 피해자와의 사이에 신임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그 구체적인 근거로 ① 가상자산은 보관되었던 전자지갑의 주소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주소를 사용하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고, 거래내역이 분산 기록되어 있어 다른 계좌로 보낼 때 당사자 이외의 다른 사람이 참여해야 하는 등 일반적인 자산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② 법정화폐에 준하는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고 거래에 위험이 수반되므로 형법을 적용하면서까지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들고 있다(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20도9789).
이와 같은 판례의 태도에 비추어볼 때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아직 다른 일반 자산에 비하여 법에서 강하게 보호할 정도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은 논의는 형사상 범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므로 민사상 부당이득반환청구는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청구권자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권리자의 착오나 가상자산 운영시스템의 오류 등 이체된 경위에 따라 피해자가 직접 또는 거래소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