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노무사 이혜지|[email protected]
1. 근로조건 명시의무와 문제제기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자에게 임금(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을 포함하는데, 이 세 사항을 묶어서 ‘임금의 세부 사항’이라고 합니다),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 유급휴가 등의 사항을 명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제17조 제1항), 이를 위반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제114조 제1호).
한편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은 사용자가 기간제근로자 또는 단시간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때에는 근로시간에 관한 사항, 임금의 세부 사항, 휴일·휴가에 관한 사항 등을 서면으로 명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제17조), 이를 위반하여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지 아니한 자에게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제24조 제2항 제2호).
이처럼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사용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에서는 형사처벌인 벌금을, 기간제법에서는 행정제재에 불과한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 근로기준법상 형사처벌 규정이 적용되는지 문제가 됩니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최근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근로기준법 제17조 제1항과 그 벌칙 조항은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도 적용된다고 해석하여야 하고, 기간제법이 이와 거의 동일한 위반행위에 관하여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고 하여 위 근로기준법 규정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가) 기간제근로자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자에 해당한다(제2조 제1항 제1호). 근로기준법 제17조도 그 적용 범위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소위 정규직근로자)로 한정하고 있지 않고, 기간제법도 근로기준법 제17조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
(나)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려는 근로자는 대부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려는 근로자보다 사용자에 대하여 열위에 있으므로 주요 근로조건을 사전에 명시할 필요성이 더 큰데도, 명문의 근거 없이 사용자의 명시의무 위반에 대하여 더 강한 제재수단을 둔 근로기준법의 규정을 배제하는 것은 근로기준법과 기간제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 기간제법의 근로조건 명시의무는 제정 이후 사실상 변함이 없는 반면, 근로기준법은 기간제법 제정 직후부터 여러 차례 개정을 통해 서면으로 명시하여야 하는 근로조건의 범위를 넓히고 방법도 주요 근로조건의 경우 근로자의 요구가 없더라도 서면을 교부하도록 하는 등 기간제법보다 사용자의 명시의무를 강화하였다(제17조 제2항). 이는 근로조건 명시의무에 관하여 그 내용을 강화하면서 기간제 또는 단시간 근로계약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않고 이를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통일적으로 규율하도록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3. 시사점
대상판결은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도 근로기준법상 규정을 적용하여 근로조건 명시 의무 위반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더 취약한 경우가 많으므로 이들에 대한 보호필요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타당한 판결로 볼 수 있습니다.
형사제재나 행정제재와 같은 불이익은 차치하고 사용자가 근로조건 명시의무를 위반하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근로자와의 근로계약 관계는 유효합니다. 그러나 근로조건을 명확히 명시한 계약서를 작성하면 근로조건과 관련한 많은 분쟁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만큼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계약서를 작성하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