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무한|[email protected]
민법상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원칙적으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통상의 손해를 한도로 하고(민법 제393조 제1항),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책임이 있습니다(같은 조 제2항).
따라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당사자는 상대방의 채무불이행 사실,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 발생한 손해의 액수, 상대방의 채무불이행과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모두 입증하여야만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액수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으며, 이러한 경우에도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사전에 배상액을 예상하여 정해두는 것이 민법 제398조가 정하고 있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입니다.
수많은 계약서에 등장하는 “위약금”은 말 그대로 계약상 의무를 위반했을 때 상대방에게 배상해야 하는 금액을 말하며, 계약서에 “위약금”으로 기재되어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에서 설명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면, “위약벌”은 위약금과 유사해 보이지만 성격이 사뭇 다르며, 의무위반에 대한 사적 제재벌이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실제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 손해의 액수 등을 따지지 않고 의무위반 사실 자체만 입증하면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위약금은 이미 발생하여 현존하는 손해의 보전을 위하여 그 배상 범위를 사전에 약정해두는 개념이라 볼 수 있고, 위약벌은 계약 체결 당시부터 당사자의 장래의 의무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압박조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발생한 손해보다 그 규모가 부당하게 과다한 손해배상의 예정액(위약금)이 있는 경우, 법원은 유사한 거래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손해배상액의 예정 규모, 실제로 발생한 손해의 액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재량에 의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는 반면(민법 제398조 제2항), 위약벌은 당사자 사이에서 정한 의무위반에 대한 벌칙이기 때문에 손해발생 유무와 발생한 손해액을 불문하고 법원의 재량에 의하여 감액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원칙입니다.
물론, 위약벌이 지극히 과도한 경우에도 그러한 원칙을 그대로 관철시킨다면 계약 체결시에 열악한 지위에 있는 당사자가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과연 “위약벌”이라고 하여 무조건 감액이 불가능하다고 볼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많은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위약벌 약정에 대한 감액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다시 한번 판단하였는바, 위약벌은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그 법적 성격을 달리하므로 손해배상액 예정에 관한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하여 감액할 수 없다는 취지로 기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을 유지하였습니다(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위 사건에서 당사자들은 공동사업계약을 체결하면서, 일방의 계약위반시 “손해배상금과는 별도로 의무사항에 대하여 불이행시 별도의 10억원을 의무 불이행한 쪽에서 지불하여야만 한다”는 문구를 포함시켰는데, 이는 손해배상과 별도로 계약상 의무위반에 대한 제재를 합의한 것이므로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볼 수 없으며, 위약벌로 해석되므로 감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위와 같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위약금)과 위약벌은 그 성격이 상이하고 법적 취급을 달리하지만, 수많은 계약서에서 그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명칭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주의를 요합니다.
표현여하를 불문하고, 계약서의 문구와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해볼 때 손해배상의무 이행을 위하여 사전에 배상액을 정해둔 것으로 해석된다면 위약금으로 보아 추후 감액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으며, 손해배상과는 별도로 계약상의무 위반시 제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정된 금전적 불이익이라면 위약벌로 해석되어 추후 감액이 불가하다고 해석될 것이기 때문에 계약 체결시 세심하게 검토하여야 합니다.